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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대기업에 다니는 벼락거지 이대리 6

이대리

by 크롱준 2021. 5. 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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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킬로미터 앞에서 좌측 고가도로 진입입니다. 1,2차로로 주행하세요. "

조과장의 벤츠에서는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 냄새가 났다.

조과장은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마 서글서글하고 꼼꼼한 성격 덕에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었다.

비싼 옷과 외제차, 비싼 시계를 가지고 다녔지만 미워보이지 않는 그가 이대리는 신기했다.

항상 정돈되고 깔끔한 말과 행동, 겉모습까지.

이대리는 차에서 나는 와이셔츠 냄새가 조과장 자체의 냄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 갔다 멈췄다를 반복했지만 조과장의 벤츠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대리는 운전과 냄새가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이대리는 투자같은거 안해?"

고가도로에 진입한 조과장이 물었다.

화창했지만 미세먼지가 가득 낀 서울하늘이 탁했다.

"아, 저 주식만 조금 하고 있어요."

"그래? 많이 벌었겠다~ 요즘 장 좋잖아~ "

"아..네... 물려있어요...... 쌔게.."

"아 ㅋㅋㅋ 진짜?ㅋㅋㅋ 미안해.. 요즘 장이 좋아서.."

"아니에요.. 임상 성공하면 금방 날아갈겁니다..

날아가면 사려고 요즘 강남 아파트 알아보고 있어요~"

"ㅋㅋㅋㅋ 어휴 곧이겠네~ 우리 아파트는 오지 마.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진짜 별로야.

왜 비싼지 모르겠다니까. "

조과장은 지금 실제로 강남에 살았는데,

원래 집도 잘 살고 처가쪽에 돈이 많아 집도 차도 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회식자리에서 취한 김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던 것으로, 이대리는 추정했다.

조과장이 별로라고 말하는 아파트 가격은 서울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대리는 대출을 끼고 '별로인 아파트'를 사려면 얼마정도가 필요한지 잠깐 생각했다.

'5월달에.. 15번만 상한가 치면 되네... '

별로인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았다.

"과장님은 뭐 투자 하세요? 저번 회식 때 뭐 하신다고 들은 것 같은데. "

"아 나는 조금조금씩 여러군데 하고 있지~ 그나마 장이 좋아서 버티고 있어."

"아.. 그럼 한국주식 하시는거에요? 아니면 미국주식이요?"

"아, 작년에 주식은 다 청산했고, 요즘은 코인하지~ "

"코인이요?? 와.. 돈 많이 버셨겠네요.."

"그냥 저냥 벌었지 뭐~"

이대리가 처음부터 바이오주식을 샀던 건 아니었다.

이대리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제학 전공에, 경영학과까지 복수전공한 뒤에는

실물경제와 기업을 알고 진정한 가치투자를 할 수 있을거란 확신을 했고,

기업 재무제표와 증권가 레포트, 그리고 주식전문 유튜브까지 모조리 분석한 뒤

이거다 하는 주식에 생애 첫 시드를 모두 넣었다.

그리고 그 다음주, 대표이사의 갑질 파문에 주가는 나락으로 갔고,

이대리는 오랜날,오랜밤동안 그 주식에 물려있었다.

그 파란 이빨은 깊고 넓게 이대리를 물고 있었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욱씬욱씬한게 팔뚝에 아직 이빨자국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인사팀 박대리가 산 테마주는 100%가 올랐다.

대표이사의 아내 동생이 유력 대권주자의 중,고등학교 동창이라 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산 주식은 90%가 올랐다.

자회사의 작은 사업부 하나가 마스크를 만든다 했다.

입사동기가 산 주식은 500%가 됐다.

미국 3상 임상에 들어갔다고 했다.

가치대로 간다면 금방 회복했어야 할테지만, 이대리의 첫 주식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주식은 펀더멘탈이고 뭐고 다 필요없구나라는 생각에 이대리는 첫 인연과의 만남을 끝냈다.

사귀고 난 후 평일엔 매일매일 데이트하고,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여자보다

하루종일 신경을 많이 썼지만 끝은 순식간이었는데, 그녀는 아쉬웠는지 마지막 쪽지를 적고 떠났다.

'실현손익 -9,699,312원'

누군가에게는 작은 돈일지 몰라도, 초년생 이대리에겐 몸쪽 꽉찬 직구였다.

주식은 한방이구나.

그날로 이대리는 바이오 주식을 샀다. 대박친 입사동기가 추천해준 회사였다.

"와.. 근데 저는 코인은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이게 뭐 실체도 가치도 없으니까.."

"다들 그렇게들 이야기 하지. 그런데 이대리, 돈이 우르르 움직이는 곳에 들어가야지.

가치가 있고 없고가 뭐가 중요해. 세력이 움직이는게 중요하지. "

"그렇긴 하죠.."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가치 있는게 어디있어. 금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

그냥 돌덩이지. 가치는 그걸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있는거야.

난 지금 시대에는 그게 코인이라고 보는거고~"

"아 넵.. 그렇긴 하죠..."

틀린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대리는 코인 어플을 켰다. 가끔 들어가서 움직이는 걸 보기 위해 깔아놓은 것이었는데,

당일에 2배, 반토막, 상장폐지 되는 걸 보면 움직이는 것이 돈이 아니라 사이버머니 같았다.

"그럼 과장님은 무슨 코인 하세요?"

"어 나는 1월쯤에 토마코인 샀다가, 3월에 팔고 지금은 키티코인 들고있어. "

이대리는 어플에 토마코인을 검색했다.

"5배가 올랐네요 과장님?!"

"응. 아는 펀드매니저가 120원에 들어가라 그랬는데 말 안듣다가

생각보다 못먹었지.. 원래 9배는 먹는건데. "

"우와..."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주위사람이 돈을 딴 건 처음 보는 이대리였다.

아무리 뉴스에서 떠들어도 뜬구름 잡는 것 같던 이야기가,

내 옆자리에 앉아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된 순간,

이대리에게 코인은 더이상 SF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바뀌었다.

"와.. 그럼 지금 키티코인은 얼마에 들어가신거에요? "

"키티? 얼마였더라..."

마침 교차로에서 신호가 걸리자, 조과장은 스마트폰을 잠깐 꺼내 어플을 켰다.

어플을 키는 중에 이대리는 창 밖을 보는 척 했지만, 온 근육을 집중해 눈동자를 돌렸다.

조과장 코인 계좌에는 총 얼마가 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매수금액 : 11억, 평가손익 : +3.4억, 평가금액 : 14.4억'

이대리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다시 창밖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놀란 감정이 어떻게해서라도 몸 안에서 나오려고 한 탓인지,

창 밖을 바라보는 이대리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이대리의 눈길이 머물러 있는 교차로 골목에는 빌딩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큰 길에 맞닿아 있는 빌딩은 지은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건물 전면이 유리로 뒤덮여있고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위를 올려다볼수록 끝없이 올라가는 느낌을 주었고,

누군가 일부러 불빛을 키는 것 처럼 창문은 봄 햇살을 맞아 반짝였다.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오가는 사람마저도, 그 빌딩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마땅히 이 도시의 일원이라는 자격을 갖추는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바로 옆에 있는 빌딩은 키가 작고 낡았으며,

입구 키는 작아 이대리가 손을 위로 뻗으면 입구 천장이 닿을 것 같았다.

올라가는 계단 중 2번째는 귀퉁이가 부서져 있었고,

3층 창문에는 지난 태풍때 창문에 붙여놓은 X자 박스테이프가 남아있었는데,

아마 더 이상은 사람이 없는 사무실인 듯 했다.

같은 거리에 있는데도, 믿기지 않을정도로 다른 두 건물을 보며 이대리는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조과장을 쳐다봤을 때, 이대리는 이상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 키티는 1100원정도에 샀네. 그런데 이거는 가려면 한참 남았어."

"아.. 그렇군요"

이대리는 자신이 못난 걸 알았지만, 너무 부러웠다.

강남 아파트에 살고 저정도 돈을 코인에 넣고 있으면 무슨 기분일지 궁금했다.

"이게 내가 전에 넣었던 펀드 매니저가 알려준건데, 지금 내부자만 아는 호재가 있대.

지금 1400원인데... 못해도 20배는 갈거라고 그러던데? "

"20배요?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이사람이 이쪽 잘 알더라고. 나는 믿고 갈꺼야~

이거 주변사람한테 말하지 말랬는데.. 이대리만 알고 있어.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된다."

"아 넵. 당연하죠!"

"이게 아는사람이 많을수록 잘 작업이 안된다더라고.

이대리니까 믿고 말해주는거야."

"그런데 진짜 되면 좋긴 하겠네요. 1억이 20억 되는건데. "

"이대리, 돈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이런것도 해버릇 해야돼.

그래야 돈을 벌지. "

"그렇긴 하죠.."

이대리같은 사람을 알 수 없는, 있는 사람들끼리의 고급정보.

이대리는 헷갈렸다.

'이게 세력인가? '

'그럼 여기에 타는 순간 나도 세력이 되는건가?'

'조과장님은 진짜 믿을만한 사람인데'

'근데 물려있어서 투자할 돈이 없는데.. '

'마통 얼마까지 뚫리더라..'

'아니야 코인하다 인생 망한사람 많댔는데..'

이대리가 갑자기 골똘히 생각하자 조과장은 한발 물러섰다.

"이대리, 절대 사라고 추천하는건 아냐. 투자는 본인 선택이니까. '

"아 넵넵. 당연하죠."

'20배...'

지금 가능한 돈으로 20배, 아니 10배만 만든 후에 시드를 키워서 투자하면,

강남 아파트도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았고,

이대리의 드림텔 정도는 대출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한달째 횡보하는 키티코인의 차트를 보며, 이대리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횡보하고 있는데 한번 넣어봐도 되지 않을까..? '

깜빡.

교차로의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언제나 그랬듯 조과장의 벤츠는 출발한지도 모르게 출발했다.

빳빳한 와이셔츠 냄새가 나는 조과장의 차에서 이대리는 다시 창밖을 쳐다봤는데,

방금까지 보던 거리 끝에는 출발 전에는 보이지 않는 빌딩이 하나 더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 무너뜨린 뒤, 재건축을 하고 있는 빌딩이었는데,

공사용 구조물이 높게 쌓여있는것을 봐서 썩 높게 짓는 모양이었다.

 

쿵.쾅.쿵.쾅

쿵쾅소리가 건설현장에서 나는건지, 가슴속에서 나는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는데,

재건축을 하는 빌딩을 보며 이대리는 알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이대리의 주택마련계획도 재건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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