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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대기업에 다니는 벼락거지 이대리 2

이대리

by 크롱준 2021. 5. 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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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대리는 입사 4년차였지만 아직 팀에서 막내였다.

막내답게 씩씩하게 인사를 마친 뒤,

자리에 빠르게 앉아 구두를 벗고 슬리퍼를 신는다.

부팅된 컴퓨터로는 9시에 막 개장한 뜨끈뜨끈한 코스닥을 보고, 짧게 탄식한다.

'하.....'

플러스 2백만원이었던 주식계좌가 플러스 50만원으로 바뀌어 있다.

몰빵했던 바이오 주식이 안 좋은 뉴스가 나온 탓이다. 대표이사가 자신 주식 일부를 팔았다고 한다.

이대리는 잃을 때마다 워렌버핏을 생각했다.

기업의 가치를 보고, 10년 이상 가지고 간다는 마인드로 주식을 사라.

주식을 살 때, 그 기업을 산다고 생각하라. 확실히 아는 것에 투자해라.

하지만 워렌버핏은 주로 물렸을 때 찾아왔고,

정작 주식을 처음 매수할 땐 이대리 곁에 있던 법이 없었다.

이 바이오 주식도 주식으로 돈 깨나 벌었다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 시원하게 산 기업이었다. 무엇을 만드는지도 몰랐다.

'친구가 올해 안으로는 무조건 임상실험이 성공한다고 했으니, 나는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보고 투자한거야. '

그 순간만큼은 워렌버핏인 고층주민 이대리는, 담낭이 씁쓸해지는걸 감출수 없음을 느끼며 주식창을 끈다.

주식창을 끈 이대리는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서 새로운 소식이 없나 살펴보고, 항상 꿈꾸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본다.

'미친....'

이대리는 집을 좋아했다. 특별히 성격이 소심하거나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지 않았지만,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집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 그 포근한 느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집은 어렸을때부터 맞벌이로 바쁘던 부모님 때문인지 이대리의 가장 큰 애인이자 친구였으며,

그런 성격 탓인지 여자친구가 있는 지금도 주말 중 하루는 집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했다.

집 밖으로 나가 무얼 하든 이대리의 체력은 깎이기 시작했고, 집 장판에 무선충전기라도 설치된 것 마냥

이대리는 집 안에 있어야만 비로소 충전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은 빈손으로 온 사람에게 집을 주기에는 너무 매정한 도시였다.

대학생때는 원룸에 자취하며, 월세생활을 했고, 강남에 있는 기업에 취직한 이후로는 신림으로 이사를 왔다.

신림은 고시생들이 많이 살아 주변보다 시세가 쌌고, 이대리는 발품을 팔고 팔아 전세를 얻어 현재 4년째 거주중이었다.

처음 입사했을때만 해도 대기업 월급 모아 가며 투자도 하고, 대출도 받으면 결혼하기 전에 집 한채 얻는건 큰 무리는 아니라 생각했던 이대리였지만,

집을 사기는 커녕 당장 새로운 전세집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6개월 전쯤 옆집으로 이사온 중국인 커플은 매일매일 뜨거운 사랑을 나눴고, 이대리는 팔자에도 없는 중국 야동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그런적 없던 이대리가 새벽에 옆 집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었을 때, 이대리는 그 때 문을 두드리며 머릿속으로는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곧 결혼할 나이도 되는데, 대체 내 집은 언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이대리는 머리가 아팠다.

누구나 처음 시작은 월세로, 전세로 시작한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몇년 후에도 집을 사기가 묘연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가격으로도 10년동안 수돗물만 마시고 살아야 살 수 있는 집이, 10년 후에는 얄밉게 가격이 올라가 있을 생각을 하니

실제로 집을 사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짜증이 났다.

'그래도 어떻게든 집은 사야지.... 눈치 안보고 살 수 있는 내 집... 내 집에서 쉬어야 힘도 나지.. 그리고 백날 월급 벌어봐야 집값 오르는거 못 따라가더라...'

하지만 이대리가 서울로 온 이후로 아파트 사랑은 언제나 짝사랑이었다.

다시 주식창을 켠다.

손익이 플러스 11만원으로 줄어 있다.

짝사랑 좀 도와달랬더니 스트레스만 받게 하는 새끼다.

주식창을 끈다.

회사랑 가까운 성남 아파트 가격을 본다.

창을 닫는다.

그 옆의 하남 아파트 가격을 본다.

창을 닫는다.

출근한지 10분만에 이대리는 일할 힘을 잃는다.

그때 김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대리~ 아 아니지. 이프로~ 잠깐만 이리 와봐~"

이대리는 정신을 차리고 김부장의 자리로 간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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