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 대기업에 다니는 벼락거지 이대리 7
"이대리, 집으로 바로 가? "
출장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같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과 나오는 것과, 조과장과 나오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조과장은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게,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흘리지 않고
전달하는 방법을 알았으며, 아무리 벽 같은 거래처 꼰대도 조과장과 이야기하다보면 말랑말랑해지곤 했다.
평일 5시에 퇴근을 하게 해주시는 사랑스러운 조과장님. 이대리는 할수만 있다면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아. 뽀뽀해줄 걸 알았으면 점심에 고등어구이 안 시키는건데.
"아 아니요!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 마포로 갑니다."
"아 그래? 나도 오늘 그 쪽으로 가는데. 가다가 내려줄테니까 타. "
"엇 감사합니다.."
이대리는 이제 뽀뽀가 아니라 키스까지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400m 앞, 우회전입니다. 그 다음, 목적지가 있습니다 '
"거의 다 왔네. 5시만 되어도 차가 좀 덜 막힌다."
"넵, 그러네요. 그런데 과장님 댁은 강남 아니세요? 약속 있으세요?"
"아, 아니야. 오늘 잠깐 장인어른이 보자고 하셔서. 장인어른이 마포 사시거든. "
"아, 그렇구나.. 어, 도착했네요."
"어, 이대리, 오늘 수고했어~ 내일 봐~ "
"넵, 감사합니다!"
이대리는 우리 조과장님 차가 혹시라도 망가질까봐 신줏단지 모시듯 차 문을 살살 닫았다.
이내 조과장의 차가 눈에서 멀어졌고, 이대리는 시계를 봤다. 아직 약속시간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이대리는 시간이나 때울 겸 곱창집 옆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스타벅스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온 이대리는 자리에 앉아 유튜브를 켰다.
예전 같으면 저녁에 커피는 피했겠지만, 서른이 넘고 허구한 날 야근을 커피와 함께 하다보니
요즘엔 커피를 마셔도 자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점점 깊은 잠은 자기가 어려웠는데,
이대리는 김부장이 자도자도 피곤하다고 하는게 이런 것 때문인가 싶었다.
'30대에 찾는 경제적 자유 - 평범한 직장인이 30억 모아서 은퇴한 썰'
'파이어족 - 당신도 될 수 있다'
'네이버 스토어팜으로 부수입 월 1200?'
이대리의 유튜브엔 요즘 들어 이런 동영상만 주구장창 떠 댔다.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슉슉 넘겼지만 도대체 왜 자꾸 뜨는 것인지 궁금했다.
'저런거 검색한 적도 없는데 왜 자꾸 나오는 걸까.'
'허구한 날 돈 이야기만 하니까 뜨는건가?'
'아니 그런데 이야기만 한다고 뜨는거면 도청이 되는건가'
'구글이 마이크 권한 가져가서 광고 내보낸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플 권한 제거할 수 있나'
이대리는 스마트폰 설정에 들어가서 이것저것을 만져보다 이내 관두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검색해서 하자니 너무 귀찮았다.
예전에 택시에 놓고 내렸던 폰 위치추적을 해보니 케냐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고,
이미 털릴대로 털린 내 개인정보따위 마음대로 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대리가 저런 경제적 자유 이야기를 처음부터 그냥 넘겼던 건 아니었고,
오히려 먼저 검색해서 찾아보던 편이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네이버 스토어팜에 중국산 물건을 올려서 싼값에 판다던지,
기업의 가치를 알아보고 묻어놓은 주식이 200배가 되었다던지.
이대리에게는 잡히지 않은 소설같은 이야기였으며, 애초에 그런것을 해 볼 의지가 없기도 했다.
어느샌가 이대리는 목적을 어떻게 이룰까보다, 그게 왜 안 되는지를 먼저 찾는 나쁜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대리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을 정도까지는 의욕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겁이 많고 게을렀다.
이대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생각 끝에는 현타가 왔다.
'키티코인....'
조과장이 말했던 코인이 자꾸 눈 앞에 아른거렸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최고봉. 코인.
뭣도 모르고 들어가면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이대리였다.
'하지만 세력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지.. 솔직히 조과장님이 나한테만 말한건 아니지 않을까..? "
'그래도 조과장님은 믿을만하긴 한데.. '
'20배....'
지이잉.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야 지금 나 거의 다 도착함 ㅋㅋ 니넨 몇시 도착 예정? '
'어 나도 그 주변이야.'
나이스. 할것도 없었는데.
'난 아까 도착해서 곱창집 옆 카페임 ㅋㅋ
'아 ㅇㅋㅇㅋ 그럼 곱창집으로 바로 감'
'나도'
'ㅇㅋ 그럼 나도 나갈게'
"사장님 여기 모듬 하나요!"
이대리는 곱창을 좋아했다. 마지막에 밥까지 비벼먹을 때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밀어넣는 김가루 볶음밥이 짜릿했다.
100세 시대에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식단조절을 해야한다고들 하지만,
곱창도 안 먹는 식단조절을 하려면 무엇을 위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아 그리고, 진로랑 테라 1병씩 주세요!"
곱창에 술을 같이 먹을수 없다면 무엇을 위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겠는가.
"야 그런데 진짜 한명 결혼하니까 모이기 힘드네. "
"그러게. 거의 7개월 됐나."
J가 작년에 결혼한 뒤, 이 모임이 모인 건 8개월만이었다.
결혼 전까지는 1달에 1번은 만나던 사이었는데, 유부남이 한 명 끼니 약속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는 않았다.
이대리는 J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야, 넌 저번에 한참 투자하던 주식 잘 됐냐?"
"아 그거? 그건 그냥저냥 돼서 팔았어. 재미 없더라고.
요즘 코인으로 재미 좀 보고있다. "
"코인? 너도 코인해? 요즘 안하는 사람이 없네."
"요즘 안하면 병신이야~ 나도 한지 얼마 안됐는데 30% 벌었다."
"30%...? 대단하네."
그 때 빨간 앞치마를 입은 종업원이 이대리의 테이블에 술을 가지고 왔고,
J는 익숙하게 소주와 맥주를 섞으며 M에게 말했다.
"넌 아직도 적금이랑 ETF만 하냐?"
"어 뭐.. 난 뭐 똑같지. 나는 다른건 좀 불안하더라고. "
"하아나 이새끼. 여전하네. 일단 한잔하자. "
언제나 그랬듯이 퇴근 후에 먹는 소맥은 황홀했다.
소주와 맥주가 섞인 탄산이, 폭죽놀이를 하며 식도를 지나가는 느낌은 이대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J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진짜 요즘엔 그렇게 살면 안돼. 왜나면..."
M는 별로 듣고싶지 않는 눈치였지만 J는 말을 이어갔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