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리

초일류 대기업에 다니는 벼락거지 이대리 5

크롱준 2021. 5. 28. 18:18

'4월 급여가 입금되었으니, 인사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

25일마다 오는 산타클로스가 어김없이 이번달에도 찾아왔다.

얼마가 들어왔는지는 알고 있지만 이대리는 인사정보시스템에 접속했다.

닭가슴살 같은 삶에 가끔 찾아오는 닭다리를 보려고.

총 급여액 4백만원, 소득세 22만원, 연금 17만원, 건강보험료 13만원, 공제회 등등.. .

이대리의 은행 어플에는 3백 50만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350... 350... 큰 돈인데... '

이대리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지금도 5백 남짓한 월급을 받았다.

이대리가 4년차에 350을 받는다고 했을 때,

역시 대기업이라며 자랑스러워하시던 모습이 생생했다.

이대리의 자취방은 전세였지만 매달 이자가 나갔고, 관리비가 6만원이었다.

수도세와 계단청소비, 엘리베이터 이용료가 포함된 금액이었고,

전기세와 가스비는 따로 내기 때문에 이대리의 서울 숙박비는 생각보다 비쌌다.

그리고 왜 또 결혼들은 그렇게 많이들 하는지 한달에 두 번씩은 결혼식이 있었다.

경조사에 조금, 고등학교 친구때문에 넣어준 보험 조금,

넷플릭스 조금, 세제,휴지,통신비 조금..

숨만 쉬고 있어도 돈이 줄줄 새는 것 같았다.

이대리는 요리를 좋아했지만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건 좋아하기 힘들었다.

양파껍질, 마늘 꼬다리, 고기 비계, 남은 음식..

이대리 집에는 남겨둬도 먹을 사람이 없었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절반만 찬 쓰레기는

금새 벌레들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VIP가 된 배달어플에는 죄다 최소주문금액이 15,000원이었고,

배달비 2천원을 추가해서 주문하면 금방 2만원을 채웠다.

강남의 비싼 점심에 커피까지 마시면 하루에 밥값으로만 4만원이 훌쩍 나갔다.

부모님 용돈에, (살기위한) 헬스장에, 가끔 친구들과 술이라도 먹으면

돈은 부르마블 머니처럼 가볍게 나갔고, 그러다보면

이대리 계좌에 남는 돈은 백만원 남짓이었다.

'명품은 산 적도 없고, 딱히 낭비하는 것 같진 않은데... 차도 없고..'

이대리는 스스로가 근검절약하는 스타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고싶은 것을 다 사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사는 비싼 옷, 비싼 차, 호텔 뷔페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고,

가끔 무슨 일이 있을때나 사는 것들이었다.

그런 지출이 있을 때는 그 달 저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나보다 못 버는 사람도 많을 텐데.. 서울에서 어떻게 사는거지'

실제로 이대리는 주변 친구들 중에서는 낮지 않은 편이었고,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높은 편이었다.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나.. '

'아니지, 배가 불러야 배부른 소리를 하지. 미친'

이렇게 수입/지출을 생각할때마다 이대리는 가슴이 갑갑해졌다.

누구한테라도 이 갑갑함을 토로하고 싶었지만,

모두가 먹고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

딱히 투정부릴 사람도 없는, 그런 못난 고민이었다.

네이버 부동산을 열어 이대리가 항상 꿈꾸는 아파트를 다시 본다.

이대리는 그 사랑스러운 아파트 이름을 드림텔이라고 지었는데,

6살이라 한창 클 때여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쑥쑥 자라 있었다.

이대리가 지금처럼 살면 40년 후쯤 빚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대리는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고,

머리는 좋지 않았지만 엉덩이 근육은 명품이었다.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하라길래 열심히 했고,

수능을 잘 봐야 인생이 핀다길래 수능을 잘 봤다.

주변에서 좋다는 SKY를 갔고,

졸업하고 다들 가고싶어하는 대기업에 갔다.

모두 이대리의 엉덩이 근육이 해낸 일이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사회에서 좋다는 대로 했고,

심지어 썩 잘했는데도. 왜 40년이나 원룸에서 살아야

드림텔을 살 수 있는지 이대리는 궁금했다.

심지어 요즘은 대기업에 다니는 기득권이라고

청약이고 대출이고 가입 가능한 것이 몇 개 없었다.

한문을 잘 모르는 이대리였지만 '기' '득' 이라는 말이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아니지.. 시키는 대로 해서 그런건가... '

이럴때면 이대리는 피지도 않는 담배가 생각났다.

그때였다.

"이대리. "

조과장이었다.

이대리는 갑갑한 생각에 빠져있느라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도 못했고,

세상 멍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지금 시간 괜찮지? 김부장님이 시킨 일이 있어서 그런데,

같이 갈 사람이 좀 필요해서. 잠깐만 외근나갔다오면 돼. "

"아 넵넵. 지금 시간 괜찮습니다. "

이대리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서 조과장 뒤를 따라갔다.